외국인이 한국에서 사업한다는 것 - 클라우드호스피탈
저희 패밀리사들 중에는 단순히 해외 시장으로 확장하는 수준을 넘어서, 해외에 본사를 두거나, 해외를 주요 거점으로 활동하시는 창업자들이 종종 있습니다. 비캔버스의 홍용남 대표님, 비손콘텐츠의 류호석 대표님, 그리너지의 방성용 대표님 등이 그 사례입니다. 세 분 모두 주요 거점을 미국에 두고 활동하시는데 각각 나름대로의 이유들이 있습니다. SaaS 의 본토인 미국에서 개발 및 영업을 해야 하는 경우, 음원 등의 IP들을 해외 스트리밍 플랫폼에 공급해야 하는 경우, 독자 기술로 개발한 2차전지 음극재의 핵심 고객들이 미국 또는 유럽에 위치한 경우 등입니다.
저희 포트폴리오들이 있다고 해서 굳이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해외에서 스타트업을 한다는 것 = 사서 고생하는 겁니다. 창업자의 삶이 원래 어려운 문제와 해결의 끊임없는 반복을 통해 한걸음씩 나가는 것인데, 사실 이러한 문제들, 예상치 못한 우연한 기회에 해결책을 찾는 경우가 참 많거든요. 예컨데, 속썩이는 임직원 이슈, 인력 수급 문제, 펀드레이징 문제, 수익 모델에 대한 고민, 기타 중요한 방향 결정, 첫번째 고객사 소개 등등, 이런 것들, 의외로 지인과의 차한잔, 이전 직장 동료나 동문과의 점심 식사 같은 데서 실마리를 찾는 경우, 생각보다 많습니다. 아무래도, 내가 태어나고 교육받고 사회생활을 하지 않았던 곳이라면, 이러한 “우연을 만들 기회” 자체가 제한되지 않겠습니까? 안면 몰수하고 들이미는 것도 최소한 비빌 언덕이라도 있어야 하는거죠. 누가 이런 것에 관심이 있는지 등 최소한의 정보라도 있어야죠.
미국에서 스타트업을 운영하시는 저희 포트폴리오 대표님들은 그나마 다행입니다. 캘리포니아 등에서는 다양한 인종들이 용광로처럼 섞여 살아가니까요. 최소한 아시아에서 온 창업자에 대해 이질감을 가지고 보지는 않죠. 그런 분들 꽤 많으니까. 그런데… 동유럽 투르크메니스탄 출신의 분이 단일 민족 국가인 한국에서 스타트업을 창업하여 운영한다면, 상당히 빡셀 것 같죠? 이 극한 직업의 주인공은 클라우드 호스피탈의 나자러브 슐레이만 대표님입니다.
클라우드 호스피탈은 전세계의 환자들을 전세계의 병원이나 의사들에게 연결해 주는 플랫폼입니다. 아무래도, 의료서비스는 자국 내에서 이루어지는 서비스이니 이렇게 얘기하면 직관적으로 와 닿지는 않습니다. 환자와 병원 및 의사를 크로스보더로 연결하려면, 콘텐츠 제작과 검색도 다국어 버전으로 되어야 하고, 진료를 받거나 의견을 주고 받을 때도 통역사가 대동되는 등 언어 문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이런 수준의 노력을 들여야 한다면, 환자나 의사 입장에서 감기 같은 가벼운 질병이 대상이 되지는 않겠죠? 그래서 본 서비스를 사용하는 환자나 병원, 의사 모두, 췌장암과 같은 중증 질병 또는, 난이도가 높고 민감한 성형 수술 등을 주제로 연결되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여기에 대부분 일반 사람들은 모르거나 관심이 별로 없는 사실이 존재합니다. 국내의 삼성병원, 세브란스병원 같은 대형 병원들을 포함하여, 전세계의 중대형 병원들은 자국의 환자들을 넘어서 동유럽이나 중동, 동남아 등 수많은 해외 지역에서 코디네이터들을 고용하는 등의 방식으로 해외 환자들을 유치하는데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자국의 환자들 대상으로만 진료하는데는 병원의 수익 증대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 해외 환자 유치 부분은 정보의 부재 및 불균형, 각국 정부의 규제, 다국적 언어 서비스 제공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매우 비효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에, 클라우드 호스피탈은, 병원들에게는 병원 소개, 의사 프로필, 의료 콘텐츠, 원격 진료, 환자 관리, 전세계 마케팅, SEO 등의 기능을 10개 이상의 언어로 제공해 주는 SaaS로써, 환자들에게는 전세계의 병원 및 의료진에 대한 검색 및 정보 제공, 의료 자문, 의료진 연결, 원격 진료 등의 기능을 제공하는 서비스로써 플랫폼을 개발하고 운영해 나가고 있습니다.
슐레이만 대표님은 한국에서 10년 넘게 거주해 오면서 학위도 받고, 일도 해왔기 때문에, 한국에 상당한 네트워크와 지식이 있었고, 한국어도 상당히 잘 하시긴 합니다만, 외국인으로써 한국을 거점으로 하여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어려움은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겠죠. 저희 또한 기존 투자자인 더인밴션랩의 김진영 대표님으로부터 자세한 설명과 추천을 들을 기회가 있긴 했지만, 회사와 처음 연결된 것은 지인 등의 소개를 통해서가 아니라, 우연한 기회에 서비스를 알게 되어서 콜드콜로 찾아간 겁니다. 이렇게 콜드콜로 시작하여 투자까지 집행된 경우는 저희 포트폴리오 중 유일합니다.
근데, 회사를 조금 더 자세히 이해하게 되면 외국인 창업자가 창업을 하는 데 있어서 단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장점도 크다는 점에서 외국인 창업자를 바라보는 관점이 상당히 바뀌게 됩니다.
우선, 이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 자체는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 아이디어를 내고 실행하기는 상당히 어렵습니다. 질병의 심각성을 불문하고 다양한 의료 서비스들에 언제든지 접근이 가능한 한국인의 입장에서 볼때는, 모델 자체가 쉽게 이해가 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전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이 한국과 같은 수준의 의료보험 시스템나 의료서비스 인프라를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뼛속 깊이 느끼기는 어렵다는 거죠. 예컨데, 암 말기 환자 분들 중 수술의 기회는 차지하고라도, 일정 수준 이상의 의료진에 적절한 시기에 연결이 되고 상담이 어레인지 되어서 제대로 된 검사나 진단을 받을 기회조차 없는게 수많은 국가의 현실이라는 점, 심지어 초강대국인 미국조차도 낙후된 의료 보험 시스템으로 인해, 고용주를 통해 적절한 의료 보험을 제공받지 못하는 경우, 비용에 대한 부담으로 제때 병원을 찾지 않고, 지병을 심각하게 키우며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는 점 같은 것들 말입니다. 슐레이만 대표님의 경우는 투르크메니스탄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이렇게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의료 서비스에 접근하지 못해서 지병이 심각해 지거나, 고칠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한채 생을 마감하는 경우를 가까이서 많이 보아 왔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문제에 대해 얘기해 보면 이해도, 체감도, 진정성이 전혀 다르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또, 크로스보더 기반의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있다 보니, 개발자, 영업 인력, 마케터, 의사 등 다양한 인력들을 전세계에서 고용하여 업무를 하는게 필요합니다. 처음에는 대표님의 네트워크가 동유럽 등에도 많기 때문에 해외에서도 인력들을 많이 고용했었죠. 그래서, 아주 초기부터, 원격 업무에 대한 프로세스와 시스템을 갖추어 놓아야 했고, 지표 기반의 OKR 등 구조를 정립해 놓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일반 초기 스타트업들보다 훨씬 더 진보되고 명확하고 투명한 프로세스, 시스템 및 정책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현재 시점에서는 개발자, 영업 인력, 의료진, 코디네이터 등 인재들을 다양한 국가에서 영입하고 있는 상황이고, 이에 대한 장벽 요소가 낮다 보니, 타사와 달리 인재 영입에 대한 어려움을 거의 겪지 않고 있습니다. 로컬 창업자가 회사를 만들어 운영하는 경우에 갖추기 어려운 구조이죠.
사실, 창업자로써 해외에서 사업한다는 것, 분명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꼭 그렇게 해야 하거나 그렇게 결정한 상황이라면, 외국인으로써 내가 가진 장점이나 경쟁력을 충분히 활용하는 구체적 방법과 경로를 찾는 것, 불가능하지 않더군요. 심지어는, 외국인 창업자의 장점을 활용해 희소성의 경쟁력 누리는 경우도 본 글에 언급한 클라우드 호스피탈 이외에도 많이 있습니다. 투자자들 또한 회사를 검토할 때, 외국인이 한국에서 사업한다는 사실만으로 인해 큰 고민 없이 투자 기회를 던져 버리기 보다는, 회사가 쌓아온 것, 이루어 온 것을 조금 더 깊게 이해하고, 현미경 보듯 자세히 들여다 보면 분명 로컬 회사들과는 다른 포인트들이 보일 겁니다.
또 한가지. 이제, 클라우드 호스피탈의 주요 지표들도 아주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의미있는 비즈니스 케이스들이 점점 많이 생겨나고 있죠. 하여, 바라는 바는 로켓처럼 천장 뚫고 올라가서, 전세계의 수많은 환자들에게 더 나은 의료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벤담의 공리주의 (?) 관점에서, 기대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