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소스, 그리고 환경 및 에너지 생태계에 대한 단상

IT 업계에 계신 분이면, 리누스 토발즈란 이름이 익숙할 겁니다. 컴퓨터의 OS 중 하나인 리눅스를 만든 핀란드 엔지니어입니다. 리눅스는 인터넷 서버, 네트워크 장비, 모바일 기기, 엣지 컴퓨팅 디바이스 등 컴퓨팅이 필요한 모든 영역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OS 중 하나이고, 이 리눅스 기술은 오픈소스 프로젝트에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지금은 오픈소스 프로젝트 개념이 너무 익숙해 졌지만, 이러한 이상적인 오픈소스의 개념 - 전세계의 엔지니어들이 금전적 보상에 대한 기대 없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기술에 기여하는 엔지니어 커뮤니티 기반의 프로젝트 - 이 이렇게 산업의 곳곳에 상용 기술로 활용되는 걸 상상하는 것이 처음에는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것도 당시 거대 테크 기업들 (Sun Microsystems, Microsoft 등) 의 최첨단 제품들과 경쟁을 하면서까지 말이죠.

이렇게 성공한 오픈소스 프로젝트는 리눅스에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컴퓨팅의 근간을 이루는 관계형 DB 소프트웨어 MySQL, PostgreSQL 을 비롯하여, 웹서버 프로젝트 Apache, 대용량 처리 엔진 Hadoop, 최근 확산된 컨테이너 기반 기술인 Kubernetes, Google에서 시작되어 원천 소스가 공개된 AI 분야의 Tensorflow 에 이르기까지, 이제는 소프트웨어의 최첨단 분야는 사실상 오픈소스에서 시작된다고 봐도 무방한 상황입니다. 대형 기업들이 운영하는 인프라들에도 오픈소스 기술이 활용되지 않은 곳은 없습니다. AWS의 DB는 MySQL을 포함하고, 구글의 모바일 OS인 안드로이드는 리눅스를 기반으로 하고, 애플의 맥북에 탑재되는 macOS도 BSD 계열의 Unix 시스템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니까요. 이렇게 오픈소스 생태계는 대기업 또는 스타트업을 막론하고 IT 첨단 산업 발전의 핵심을 이루며 발전해 왔습니다.

보통 어떤 영역에서 큰 혁신이 일어날 때 그 스포트라이트는, 창업자이든, 기업이든, 슈퍼스타 하나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스토리를 만드는데 좋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가 시장에서 최종적으로 받아들여지기 까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생태계의 요소들이 장기간에 걸쳐 성숙하며 시장 참여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임계점을 넘어간 결과입니다. 예컨데 자발적인 오픈소스 커뮤니티 생태계가 성숙하지 않았다면, 수많은 엔지니어들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핵심 코드가 없었을 것이고, 인터넷도, AI도, 빅데이터도, 모바일도, 로봇도, 스마트팩토리도 지금과 같지 않았을 겁니다. 이는 결코 IT 분야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닙니다. 한국의 뷰티 산업이 지난 10년간 크게 성장한 기반에는 국내의 화장품 OEM 인프라의 성숙이 그 밑바탕에 있습니다. 코스맥스, 콜마와 같은 OEM 기업들의 인프라가 없었다면, 다양한 브랜드들의 성분에 대한 조건이나 복잡한 납기 요구를 수용하거나 받아들일 생산 역량이 안되었을 수 있고, K-뷰티의 전성시대가 오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국내의 케이팝 그룹들의 육성 방식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논쟁은 뒤로 하더라도, 오랜 시간에 걸쳐 대형 엔터테인먼트 기업들로부터 발전된 체계적인 아티스트 육성 방식과 생태계가 조성되어 있지 않다면, 오늘날의 BTS나 블랙핑크를 보지 못했을 수도 있죠.

반대로, 과거에 제가 일하던 미국의 VC에서 저희 팀 동료들이 투자했던 Oculus 는 세계 최초로 VR 디바이스와 앱스토어 플랫폼을 의미있게 구축하던 스타트업입니다. 이 기업으로 인해 가상현실이라는 새로운 미디어가 주목받기 시작했고, 미디어 시장에 가져올 변화에 대한 기대가 하늘 높이 치솟았죠. 이런 상황을 반영이라도 하듯, Facebook (현 Meta) 에서는 크게 보여줄 KPI가 없었던 Oculus를 2조 남짓한 파격적인 가치로 인수하는 결정을 합니다. 인수 후 Facebook 은 VR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Oculus 팀에게 상당한 자금적 정책적인 지원을 합니다. 그런데, 그 후 10년 가까이 지난 현재까지도 VR이 대중적으로 확산되는 현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VR 생태계의 구성 요소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영상 제작 크리에이터들이 해당 콘텐츠의 문법에 대한 고민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IP 소유자들에게 참여를 설득할 충분한 포인트가 마련되지 않았으며, 따라서, 대중들도 VR 기기를 구매하고 시간을 쏟을만한 동기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 또, 인간의 시각이 어지러움을 느끼지 않을 만큼 실세계와 가까운 디스플레이 환경을 구축하는 부분에서도 기술적으로 해결해야 할 난제가 많은 상황이었습니다. 즉, 임계점을 넘어갈 만큼 생태계가 아직 충분히 조성되지 않았던 것이죠.

과거를 회상하면 명확해 보이지만, 사실 이렇게 생태계의 성숙을 미리 가늠하는 건 정말 난이도가 높은 일이고, 여기에 VC 투자의 어려움이 존재합니다. 미래에 도래할 시장을 미리 예상하고 투자를 해야 하니, 이러한 변화가 실제로 오게 될지 여부, 즉 “방향성” 뿐만 아니라, 그 분야의 생태계 성숙에 따른 임계점이 오게 될 시점, 즉 “타이밍” 을 가늠해 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거죠. 그렇지 않으면, 마치 공상 과학 소설처럼, 도래하지 않는 미래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처지가 되거든요.

저희 팀이 기후 및 환경 관련 펀드를 만들고, 지난 1년간 관련 기업들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기 시작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기후와 환경 관련된 생태계에 임계점이 도래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판단의 배경에, 우선은 2016년에 파리 기후 협정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전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이 2050년의 탄소 배출 제로 계획에 합의하며 목표치를 구체적으로 설정함으로써 실제 실행 가능한 기대치가 생겼습니다. 블랙록 등 대형 자본들도 피투자 기업들의 업무 프로세스에 신재생에너지 사용과 탄소 절감을 포함할 것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애플, BMW, 삼성전자, 나이키 등의 기업들이 기업 운영에 필요한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사용하겠다는 RE100 을 선언하고 빠르게 실행에 옮기고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죠. 이렇게 되면 이들의 공급망에 속해 있는 공급사들과 파트너들 또한 이들과 거래 계약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탄소 절감을 그들의 프로세스에 반영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의 국가들은 탄소국경세 도입을 이미 가시화하고 있기 때문에, 해외로 제품을 수출하는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에 직접 반영이 될 것이고이렇게 되면, 탄소 절감 프로세스가 미비한 기업들의 제품 경쟁력은 큰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에 따라 이와 관련된 시장과 생태계는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태양광, 풍력 발전, 가상발전소 (VPP), CDR (이산화탄소 제거), 그리드 안정화, ESS 및 BMS (배터리 관리 기술), 스마트 모빌리티, 그린 수소 저장 인프라, IoT / 로봇 / AI를 통한 오퍼레이션 효율화, 빌딩 에너지관리, 탄소 회계, 미세조류 플랫폼, 바이오 매스, 바이오 디젤, 친환경 비료, 푸드 테크, 농업 기술 혁신, 재활용 분야, 바이오 플라스틱 등 관련 영역을 다 나열하기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대중들이 환경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고 행동에 변화를 가져가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예컨데, 친환경 음식, 친환경 소재, 친환경 브랜드들을 찾아서 프리미엄을 지급하면서 제품을 구매하는 고객들에 대해서 이제는 더이상 고상하고 유별난 환경 주의자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런 대중들의 행동 변화는, 이상 기후로 인해 전세계가 홍수, 폭우, 폭설, 태풍, 해수면 상승의 피해를 입으며 기후 변화 위기를 몸소 체감하게 된 것을 감안할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렇게 전세계적인 환경 및 탄소 절감에 대한 대중들의 거대한 행동 변화는 단순히 기후 변화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기후 위기를 체감하기 훨씬 전부터 온갖 비판을 마주하며 환경에 대한 관심을 가질 것을 촉구한 수많은 인물들이 있었습니다. 암벽등반가로써, 또 서퍼로써 환경 친화적 장비와 의류를 만들기 위해 회사의 거대한 성장을 거부하면서 환경보존의 기업 철학을 고수했던 파타고니아의 창업자 이본 쉬나드, 미국의 정치가로써 화려한 삶을 뒤로 하고 90년대부터 환경운동에 전념하기 시작한 미국 전 부통령 앨 고어, 구글, 아마존, 유튜브에 투자하고 OKR을 실리콘밸리에 전파하였지만 수익성이 검증되기 전부터 환경펀드를 조성하여 환경 혁신 분야에 지속적으로 투자를 해온 클라이너퍼킨스의 VC 존도어, 기성세대들의 환경문제에 대한 방관에 분노하여 15세부터 전세계에 분노에 찬 목소리로 환경보존을 부르짖었던 스웨덴의 그레타 툰베리, 수면상승으로 인해 생존이 위협받는 카리브해의 작은 섬나라 총리로써 선진국들의 책임 있는 행동을 촉구하며 이에 대한 현실적인 방안을 제시해 온 바베이도스의 모틀리 총리 등입니다. 그들의 동기가 정치적이던, 감정적이던, 개인적이던, 이타적 욕망이던, 인류를 위하는 자애로운 마음이던,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본인들에게 금전적 이익이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끊임없는 액션이 대중들의 행동에 변화를 이끌어 내었다는게 중요한 거죠.

기후 환경 산업이 큰 시장이 될 상황이 오고 나서야 이제 펀드를 만들고 숟가락을 얹는 저희 같은 사람들. 사회에 긍정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고 자뻑하는건 민망한 겁니다. 저희 같은 사람들만 있었다면 영화 “돈룩업” 처럼 위기에서 빠져나갈 방법 없이 환경에 대해 희망을 갖고 무언가 해볼 수 있는 기회조차 오지 않았을지 모르죠. 그래서요. 앞으로 환경 분야에 계신 창업가 분들, 그리고 환경 분야에서 투자하게 될 VC분들과 투자자 분들, 또 연관 분야에 종사하시는 분들은 앞으로 유니콘 되시고 큰 성공 하시게 되면 꼭 잊지 않고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성공에 대해서는, 위와 같이 환경 변화를 끌어내기 위해 앞서 끊임없이 노력했던 분들에게 엄청 큰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요. IT 산업에서 성공한 많은 테크기업, 창업가, VC 분들이 오픈소스 커뮤니티와 이를 주도했던 리누스 토발즈 같은 리더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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