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리그와 새 팀에 적응이 필요없는 선수 - RXC
많은 분들이 그렇겠지만, 저도 축구 경기와 프리미어리그를 좋아하고, 아스널 팬 이기도 합니다. 불운하게도 아스널은 리그에서 우승한지 너무 오래 되었고, 전설의 아르센 뱅거가 감독직을 사임 (?) 하면서 4위 싸움에서 밀린지도 한참 되었죠. 내가 왜 하필 어린시절, 바이에른뮌헨이나 바르셀로나 같은 팀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후회하면서 인고의 시간을 보낸지가 거의 10년이 되어갑니다.
하지만, 프리미어리그처럼 전세계 최고 축구 선수들과 감독들이 모인 프로 축구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 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고, 전 유럽의 최고 팀들이 다시 모여서 경쟁을 하는 챔피언스리그에서의 우승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런 리그에서 타이틀을 얻는 것은 모든 프로축구 선수들과 구단들의 꿈이기 때문에 이를 이루기 위해 각 구단들은 최선의 노력을 합니다.
이 노력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최고의 선수들을 영입하는 것이죠.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는 메시라는 세계 최고의 선수를 보유하는 동안 한번도 우승하기 어려운 챔피언스리그를 4회나 우승했고, 자국 리그인 프리메라리가에서도 10회나 우승합니다. 메시와 세계 최고의 라이벌인 호날두를 보유했던 레알마드리드 또한 호날두가 있는 동안 챔피언스리그를 4회 우승했으며, 프리메라리가에서도 2번 우승하게 됩니다. 저의 최애팀인 아스널 또한 최고의 선수들을 데려오기 위해 참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아스널도 나름 명문 구단이다보니, 당대에 최고라고 일컬어지던 외질, 산체스, 오바메양 등의 선수들이 아스널을 거쳐가며 구단 역사의 일부를 장식했습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만, 많은 선수들이 이전 팀에서 엄청난 활약을 보이다가도, 다른 나라의 리그나 다른 팀으로 옮기게 되면, 갑자기 다른 사람이 빙의한 듯, 매우 실망스러운 경기력을 보이는 일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아스널의 경우 프랑스 리그1 에서 엄청난 활약을 보이던 니콜라 페페를 클럽의 역사적인 금액 - 무려 1천억이 넘는 금액 - 으로 영입하였지만, 지난 3년간 매우 실망스러운 활약을 보이며 팬들에게 많은 원망을 듣고 있죠. 현시점 세계 최고의 윙어라 해도 부족함이 없는 손흥민 선수의 경우도, 독일 레버쿠젠에서 프리미어리그의 토트넘으로 이적한 후 초반에는 적응에 꽤 어려움을 겪으며, 다시 독일 분데스리가로 돌아가는 것을 고민하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저는 축구 감독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선수가 이적 후에 성공하는데 필요한 요소가 무엇인지 정확히는 모릅니다. 하지만 상식적인 수준에서 예상해 볼 수는 있죠. 아마도 내가 이전 리그에서 뛰던 팀에서 가장 잘하던 바로 그 역할을 새 팀에서도 맡을 수 있다면 당연히 새팀에서도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질 겁니다. 사실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던 선수가 갑자기 뒤로 빠져서 수비형 미드필더나 원볼란치를 맡게 되면 잘한다는 보장이 없고, 같은 공격 포지션이더라도 왼쪽 윙어로 뛰던 공격수가 갑자기 포지션을 변경해서 9번 중앙 공격수나 오른쪽 윙어로 뛴다면 잘한다는 보장이 없죠.
창업을 하는 분들은 정말 제각기 다른 배경을 가지고 창업을 합니다. IT 회사에서 프로덕 매니저나 엔지니어이셨던 분들도 있고, 금융이나 컨설팅 백그라운드가 있는 분들도 있으며, 학교를 졸업하거나 자퇴하고 바로 창업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분들이 아무리 과거의 직장에서 끝내주는 커리어를 쌓고 주변에서 역량을 인정받았다고 하더라도, 일단 내가 창업하는 순간, 완전히 “다른 리그” 로 이동하게 됩니다. 산업 분야, 밸류체인, 내가 활용할 수 있는 인맥과 네트워크의 종류, 책임감의 무게 수준 등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창업자로써 하게 되는 매일매일의 업무와 신경써야 하는 디테일들은 내가 과거에 엄청 잘하던 그 역할들과는 아주 많이 다른 역할들이 될 수 있죠. 포지션 변경입니다.
하지만, 창업하는 산업 분야가, 과거에 내가 대단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던 동일한 산업 분야이고, 또 창업 후 맡게될 역할과 업무와 포지션이 내가 창업 이전에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주던 그것과 매우 유사한 경우라면 어떨까요? 마치 손흥민이 레알마드리드로 이전하여 토트넘에서 맡던 동일한 윙어 역할을 맡게 된다면… 게다가, 같이 뛰는 동료 중앙 공격수가 벤제마이고, 동료 윙어가 비니시우스라면… 상대편 수비수들에게는 지옥이 될 것 같습니다! 아마도 새 리그와 새로운 팀에 적응이 전혀 필요없을 수도 있겠네요.
작년 말에 주변 분들로부터 알엑스씨에 관한 질문을 참 많이 받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설립하자마자 무려 200억이라는 거금을 투자받게 되었으니, “도대체 어떤 회사길래?” 라는 의문이 드는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또, 이런 규모의 시드 투자는 한국에서는 거의 사례가 없고, 거금이 왔다갔다 하는 실리콘밸리에서 조차도 드문 일이거든요. ➔ 알엑스씨 투자 기사
사실 많은 얘기를 이처럼 공개된 공간에 적을 수는 없지만, 간단히 이렇게 얘기해 보겠습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새로운 구단을 만드는데 미드필더에 케빈 데 브라이너, 9번 공격수에 해리 케인, 좌측 윙어에 손흥민, 우측 윙어에 살라로 구성하여 팀을 만들고, 감독은 펩 과르디올라입니다. 이 구단에 투자하시겠습니까? 구단 가치는 얼마로 하실건가요?
얼마전에 드디어 알엑스씨의 새로운 커머스 서비스가 “프리즘” 이라는 브랜드하에 베일을 벗었습니다. ➔ 프리즘 오픈 기사
저도 점차 프리즘의 구매 고객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투자 당시에 머리로만 이해하던 유한익 대표님과 하지수 CPO님의 “발견형 커머스 시대” 에 대한 프레임을 이제는 감각으로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아스널에 대한 원망이 드네요. 아스널은 왜 손흥민을 영입하지 못했을까?